미국 톱 사회학 저널: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회학 저널인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미국 사회학 저널)의 최신 논문들을 훑어보고 요즘 사회학의 연구자들이 나아가려 하는 트렌드를 파악해보려고 한다. AJS의 총 논문 개수는 68,029 개에 달하고, 네이버에 기재된 피인용 수는 426,941회이다.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의 Volume 128, Number 1에 나와있는 첫 번째 논문은 "Optics of the State: The Politics of Making Poverty Visible in Brazil and Mexico" (국가의 시선: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빈곤을 드러내는 정치)이다. 이번 이슈에는 정치학과 사회학으로 유명한 미시간대에서 조교수가 쓴 논문 두 편이 개제 되었다. Luciana de Souza Leão 교수는 콜롬비아대에서 2019년 박사학위 취득 후 미시건대에서 조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Leão 교수의 주 관심사는 비교 및 역사적 접근, 국제 사회학, 인종과 민족, 불평등과 계층화, 정치와 사회 변화, 지식, 과학으로 기재되어있다.
논문 초록
흔히 이전의 사회학 연구는 어떻게 국가 가독성 (State legibility)이 인구 통제의 한 형태로 작용하는지를 강조한다. 종종 간과되는 것은 국가가 통제하려는 의지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러한 가독성의 변동성이 국가의 가독성 작업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변동을 설명하는 비교학 관점에서 가독성을 연구하기 위한 3차원 분석 프레임워크(three-dimensional analytical framework)를 제안한다. 브라질과 멕시코가 조건부 현금 지급 프로그램(CCT)을 구현하기 위해 가난한 개인들을 어떻게 눈에 띄게 했는지 심층 분석을 통해 이 프레임워크의 유용성을 증명한다. 1990년대 중반, 이 두 국가는 매우 유사한 도전에 직면했고, 동일한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조건부 현금 지급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가난한 가족을 구분할 수 있도록 각각 다른 해결책을 채택했다. 약 1만 쪽 분량의 공문서와 100여 명의 관료·정치 엘리트와의 심층 인터뷰,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18개월에 걸친 현장조사를 분석한 결과, 이 논문은 "국가처럼 보기"라는 뚜렷한 방식이 주는 정치·지배적 효과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가독성 프로젝트의 차이와 결과가 각각의 조건부 현금 지급 프로그램의 합법성의 정치(politics of legitimation)에 의존해 국가 자체를 더 많은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따라서 국가를 더욱 강도 높은 국민 감시의 영향 아래 놓았다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논문 포인트 짚어보기
1. 국가 가독성
국가의 가독성은 처음 예일대학의 비교 정치를 연구하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James Scott의 개념 "Seeing like a State" (국가처럼 바라보기) 이라는 저서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여기서 nation이 아닌 단어 state를 쓴 점이 특이하다. State는 한글로 미국의 다양한 "주 (州)"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영어로는 주권을 가지는 국가, 나라, 정부를 뜻한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국가 (nation) 은 "공통의 언어, 역사, 문화, 그리고 (보통) 지리적 영역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뜻하고, 이에 반해 정부 (state)는 "법, 영속적인 영토 경계, 주권을 포함한 공식적인 정부 기관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들의 연합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본래 서양 국가체계에서는 혈연, 지연, 문화적 종속성이 강한 동양과는 달리 국가의 법적 체계와 틀이 더욱 강조되었다. 고대 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다양한 민족을 일관성 있는 법적 체계에 들인다는 의미에서 State 개념으로부터 출발했다. 반면 비슷한 국가를 뜻하는 nation은 독일의 초기 근대 군주국에서처럼 하나 이상의 국가로 대표되는 국가를 뜻한다. 따라서 단일 국가로 구성되거나 지배되는 국가를 종종 민족국가 (nation-state)라고 부른다.이런 이유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국가를 뜻하는 단어만 해도, country, nation, government, state, 그리고 앞서 설명한 nation-state와 같이 다양한 개념으로 존재하고 문맥에 따라 다른 단어를 채용한다.
Leão 교수와 Scott 교수 모두 State이라는 단어를 써서 논문의 제목을 달았는데, 위와 같은 문맥을 보았을 때 "정부"라는 뜻에 가까운 State이라는 단어를 썼던 이유는 바로 정치적 체계와 구성 논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국가처럼 바라보기"라는 뜻은 무엇일까? 이 저서에서 가장 유명했던 개념은 바로 "국가 가독성"인데, 스콧 교수는 국가 가독성을 단순화되고, 양식화된 행정 및 국가 규제를 통해 국민의 활동을 손바닥에서 위에서 바라보듯 "교묘한 조작" (manipulation)이라고 설명한다. 국가 가독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행위는 인구 조사, 지도 및 여러 측정단위의 표준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수탈을 위한 목적으로 호구조사를 이용했던 논리와 같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호구조사는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호구조사는 1896년 9월 고종이 발표한 '호구조사규칙'이라고 한다. 고종은 그 시기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각 가구에 호패를 붙이고 원적을 표기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정보 수집 활동은 계속 커져만 가는 국가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의 국가 권력은 과거의 "복잡하고, 가독성이 낮은, 지역의 사회 관행"을 "행정적으로 더욱 편리한 형식"으로 전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정부가 시민의 일상생활과 데이터를 인구 조사와 같은 표준적인 통계지표로 만드는 것은 바로 '국가 가독성'을 높이는 행위가 된다.
2. 합법성의 정치
Leão 교수는 각각 멕시코와 브라질의 정치관료가 빈곤층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서로 다른 국가 가독성의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Leão 교수가 주목한 세 가지 차이점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통계 데이터의 양 혹은 정확도를 중시할 것인지, 2) 포괄성 혹은 효율성을 상징적으로 내세울 것인지, (3) 빈곤층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정보의 불투명성 혹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투명성을 중시할 것인지. 논문의 저자는 멕시코와 브라질 국가들이 이 분류기준에서 내린 선택들은 각각의 상이하게 채택된 정치적 합법화 전략을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공공 및 민간 기관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상황에서, Leão 교수의 연구결과는 "빈곤층의 데이터"를 둘러싼 분쟁이 빈곤가구에 필요한 정부 지원금을 장기적으로 보조하기 위해 "정치적 생존력"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합법성의 정치는 정부 지도자들이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국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달려있다.
글을 마치며: 우리나라 빈곤통계에 주는 함의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균등화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의 비율)은 2020년도에 15.3%로 지난 2011년의 18.6%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고 있다고 한다. 이는 영국(11.7%), 독일(9.8%), 프랑스(8.5%) 등에 비해서는 높은데, 한 교수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우리나라의 높은 고용률과 실업률에 비해 상대 빈곤율이 높다는 것은 상당수의 빈곤층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 및 관련 연구자가 빈곤 관련 정책 수립의 근거 자료로 주로 사용하는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정부 정책의 빈곤 감소 효과, 소득분배 효과 등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 소득 기준에 따라 빈곤층을 선별하고 있다. Leão 교수의 연구결과가 결부해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브라질이 빈곤계층의 규모와 집단을 특정하는 데 사용되는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브라질과 한국 모두 소득 규모를 기준으로 빈곤층을 정의하는데, 이는 쉽게 통일된 기준으로 빈곤층을 정의하기는 쉬우나, 멕시코처럼 다중 빈곤 지표(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와 같이 소득지표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육, 건강, 거주환경의 질 등 삶의 질적 수준을 제대로 평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통계 지표는 아니다.
빈곤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이러한 통계지표가 필수적인 만큼, 정부에서 어떻게 더욱 세밀한 질적, 양적 빈곤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물론 정치적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만큼.